예레미야애가 3장 19절-26절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애가를 묵상하면서 예레미야가 왜 눈물의 선지라로 불리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매일 묵상 페이지를 넘기면서 ‘슬프다’, ‘눈물이 뺨에 흐른다’ 등과 같은 표현을 보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나라는 패망하였고 청년들은 모욕과 죽음을 당하고 제사장들 조차도 성전에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나라 전체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겪는 고통을 쑥과 쓸개즙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 이토록 처참한 것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애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셨을 때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를 보여줍니다. 당장 굶고 죽음을 당하는 것도 슬프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위기를 당한 백성들에게 도움이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애가는 선지자의 슬픔을 통해 하나님의 슬픔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갓난 아기에게 엄마처럼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절대 잡고 있는 손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 손을 놓치고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슬프고 그 백성들도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슬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슬픔은 기도가 되어서 주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마음을 통해 현재 상황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감정이 공감되고 증폭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같이 기뻐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아주 처참하게 무너진 상황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소망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신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 중에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다시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기 암시나 자기의 신념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깨달아지고 그것을 근거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비록 눈 앞의 상황이 바뀐 것은 없지만 믿음을 통해 역설적인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고통 가운데 두고자 하심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어려움 속에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본심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늘 하나님과 공감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에게 주워지는 축복입니다.
질문) 최근에 나에게 벌어진 일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