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창의성과 상상력이 부족한 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도 늘 곤혹스러웠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진지하게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게 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매우 일차원적인 삶의 태도였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삶은 동물들도 충분히 살아갑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런 태도에는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이 된 지금, 꿈꾸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전히 부담도 느끼지만 동시에 설렘도 적지 않게 생깁니다.
하지만 “원대하게 꿈꾸고 분명하게 이루라”는 말을 들으면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어릴 때는 큰 꿈을 꾸는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고, 지금은 목회자로서 그것이 너무 세속적인 욕망이나 개인적 야망은 아닌지 스스로 검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도 해 봅니다. 나는 정말 꿈을 꾸지 않고 살아왔는가? 나의 작은 꿈들은 언제나 거룩하고 주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생각해 보면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도 “오늘 하루 무사히”라는 꿈을 품고 살아갑니다. 자녀들이 자신보다 덜 고생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거의 모든 부모가 품는 꿈입니다. 더 편안하고 안전한 미래를 소망합니다. 다만 그것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훈련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작은 꿈을 꾸면서도 얼마든지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목회자로서 가난하게 사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십자가처럼 여긴 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청빈이라는 미덕으로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로 인해 사역의 여러 기회를 놓치고 긴 시간을 견디기만 했던 아쉬움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꿈의 크기가 아니라 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삶의 방향을 계속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담스럽게 들리는 원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진지하게 따라가 보려 합니다. 나중에 “그때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후회만 남는 노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꿈이라도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결심을 한 제 자신을 먼저 칭찬하며 한 걸음 내딛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