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김이란 단어는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위한 희생의 제물로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섬김을 받는다. 섬긴다” 라는 말의 뉘앙스는 포장이 잘 되어 있는 성탄 선물을 받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섬김을 행하려 할 때 내가 상대방을 섬긴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 예쁜 포장을 뜯고 나면 섬김의 내용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주에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분이었습니다. 당연히 목사인 저로서는 무조건 나서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자 도움을 받아야 할 분이 약간의 곤란한 상황을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저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 마음 상태에 대해 그 분으로부터 거꾸로 섬김을 받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섬김에 대해 돌아보았습니다.
섬김은 상대방의 필요를 따라 채워 주는 것입니다. ‘나는 섬겨야 하는 사람이다’ 의무감만으로 행할 것이 아니라 내가 섬겨야 하는 사람이 필요가 무엇인지 보고 그 부분을 준비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지난 주에 만난 분을 위해 내가 섬겨야 하는 것은 나의 시간을 드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필요한 것이 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필요를 파악하지 못하니 나중엔 섬김을 받는 분과 섬겨야 하는 나의 위치가 뒤바뀌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듯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섬김이란 조금의 귀찮음을 늘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크게 한 번 마음 먹지 않으면 실행활에서 실천해 보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금의 귀찮은 섬김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귀찮은 섬김이란 우리가 하고자 할 때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귀찮은 섬김이란 행하고 나면 조금의 피곤함도 찾아오고 다음에 또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난 후 한편으로 자신을 향해 ‘잘 했어!’라고 말해주며 토닥여 줄 수 있는 일입니다. 거창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너무 오래 동안 마음의 준비상태만 점검하고 있지 않나요? 작고 귀찮은 섬김을 기다리는 많은 일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섬김을 향해 수고의 훈련을 해 보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