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1절-14절 말씀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성령을 받고 성령 안에서 사는 생활을 풍성히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육체의 일로 신앙이 변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배경에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복음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어떤 요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신앙을 떠나 인간적인
힘으로 이루는 종교생활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은 평범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이
무엇을 했던 기독교 집안이다 라는 식의 태도부터 나는 이 정도까지는 하며 사는 교인이다 라는 식의
자랑이 가만히 우리 자신에게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자랑할 수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정작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 식으로 따지자면
아브라함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상은 우상을 섬기던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복을 주신다고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얻은 의로움이기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의로움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을 자랑할 것이 하나도없습니다. 자랑할 거리를 찾아 다닐 필요도 없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믿음만 있다면 의롭다 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까요? 믿음을 부인하진 않지만 조금 더
뭔가를 더해야 의로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자기 자랑할 기회를 찾는 수단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렇지만 율법을 지켜 자신을 더 당당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율법은
지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저주가 다가옵니다. 항상 모든 율법을 지켜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엔 예수님이 율법을 어겨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저주는 바로 바울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대신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 자랑을 찾고자 하는 유혹이 있다면 다시 은혜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복음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더 온전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질문) 자랑을 찾는 신앙에서 나의 무가치함을 알고 은혜로 들어간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