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득하고 계시는 하나님

2016년 10월 2일 주일 설교 요약
요나 4장 1절-11절 말씀입니다.

니느웨 얘기가 나오는 요나서입니다.
니느웨란, 앗수르, 앗시리아에 있는 오래된 역사의 도시입니다.
창세기에서 언급될 때에 큰 도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B.C. 1000년 경에 부강하였는데, 앗수르도 마찬가지로 강대국으로 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에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현대의 이라크 모술이라는 곳이 바로 니느웨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문명이 일찍 발달한 곳이면서 역사의 굴곡이 많았던 장소입니다.
요나를 설득하고 계시는 하나님, 나를 설득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라고 4절에서 질문하십니다.
9절에는,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11절에는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질문을 하시며 요나를 설득하고 계십니다.
이 중 앞 두가지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나를 설득하시는지, 나를 어떻게 설득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우선 1절부터 4절까지를 읽겠습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선지자인 요나가 하나님을 향해서 항변을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줄 알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 화가 나 있습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크지 못하고 어린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 선지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역시 쓰십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시절, 두번째로 계명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나온 얘기입니다.
바로 그 말씀을 가지고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불편한 마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불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아이 같은 모습입니다.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얘기하면 됩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을 예상했는데 이제 그대로 되었으니 내가 죽는게 더 낫겠습니다, 라고 분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사실 요나 자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며 다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셨고, 하나님 앞에서 화를 내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요나를 지켜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시려는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결정과 나의 결정이 함께 대립해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결정이 살아있다면 하나님의 결정을 사라지게 됩니다.
요나는 지금, 자기 세계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기 시작할 때에 그 크신 역사하심이 나타나심을 믿습니다.
나의 일, 나의 결정이 더 옳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몫까지도 내가 다 움켜쥔 채 사람들은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도 못하는데 내 삶의 엉켜진 실타래가 풀릴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 고집, 가치로 하나님의 일하심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내어드리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고 인애하신 분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두번째 질문, 5절 이후 9절 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요나에게, 더 화가 나는 일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뜨거운 팔레스타인 지방의 해를 가릴 수 있는 박넝쿨을 주셨는데, 이로 인하여 요나가 아주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벌레와 뜨거운 동풍으로 인하여 박넝쿨이 마르자 요나는 바로 힘들어 하며, 내가 옳다고, 당장 죽겠다고, 화를 내겠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요나의 모습을 보면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인 것이 보입니다.
간신히 자기, 자기 가족, 민족입니다.
자기 사랑에 갇힌 사람입니다.
니느웨는 원수 나라인 앗수르의 중심이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원수의 나라가 망한다고 우리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의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좀 더 강했던 때입니다.
마침 이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요하고 살만한 때였습니다.
요나에게는, 기울어진 국력의 앗시리아가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니느웨도 마땅히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하는 나라였습니다.
내가 받은 구원이 감사하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애쓰고 그들의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러한 은혜 속에 살도록 마땅히 돕는 사람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복 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은혜를 받으며 살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3장까지도 얘기가 충분히 해피엔딩의 결말이 될 수도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4장을 통해서 하나님은 요나를 설득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끼는 영혼이 12만이나 있다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10절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 라고 물으시는데, 요나의 대답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눈물만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요나를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기쁨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네가 설득이 되었구나, 라는 기쁨.

하나님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도 설득하고 계십니다.
요나에게 한 질문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질문하시며 설득하고 계실 것입니다.
네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옳으냐, 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옳으냐, 라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고집을 부리며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설득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최고로 여기는 박넝쿨을 제거하시면서, 네가 지금 이것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실 것입니다.
마냥 자비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설득되며,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내가 틀렸다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은 기쁘게 우리를 다시 한 번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서 설득되어지고 주님의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는대로 쓰임 받는 우리 삼일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나에게 다가가시는 따뜻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나 이상으로 저는 내 고집을 꺾지 않고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더 설득해 주십시오.
내가 받은 충분한 은혜, 다른 사람도 그 은혜를 받으며 살도록 돕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똑똑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계신지, 나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계신지, 나를 어떻게 설득하고 계신지 보았습니다.
더 이상 내 자리에서 고집을 부리며 살지 아니하고, 오늘 내가 주님 앞에 한 결단대로,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적은 용기를 가지고 적은 마음을 드렸지만 주님의 크신 역사가 그 결단 속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