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것을 위하여

2016년 6월 5일 주일 설교 요약
히브리서 6장 9절-12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호주에 사시면서 아직도 한국에 가기를 원하시는지, 아니면 여기서 더 열심히 살다가 천국에 가시는 것을 원하시는가요?
히브리서에 강하게 나타나는 사상이, 너희는 나그네이다, 라는 것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백성을 생각할 때에, 분명히 그들은 광야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약속의 땅에 가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패하였고, 그러므로 너희들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경고가 군데군데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의 본문, 6장 9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을 읽었는데 이 전의 4절부터 8절까지에는 강력한 경고의 문구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해석하기가 어려운 구절을 종종 대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한 파트가 바로 이 히브리서 6장 4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읽어볼까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4절 5절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의 비추임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하였고,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는데도 타락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교회에서 여러 체험을 하고, 은사도 나타나고, 기도의 뜨거움 속에서 기도의 능력도 맛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돌아서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과 열심으로 교회를 다니다가 하루 아침에 신앙생활을 안한다는 경우, 간혹 듣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강력한 체험도 못해본 신앙생활의 초보자인데 그럼 나는 더 떠나기 쉬운 사람인가?
이 경고의 말씀을 읽으면 그런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내가 만약 그렇게 체험도 하고 뜨거운 마음도 있었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열두명은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의 경험보다도 훨씬 기적적인 경험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하나는 예수님을 배신했고, 나머지 열한명의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은사도 체험도 필요하지만, 정말 인격적으로 예수님 만나는 것이 제일, 제일 중요합니다.
그것이 체험보다 더 중요합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다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옆에 사람이 있을 때에 그것을 알고, 대화를 하면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고 말이 통하듯이 예수님과 그렇게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예수님이 안느껴지기가 더 어렵습니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체험이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삼일교회 성도님들에게 정말 원하는 바가 있는데, 여러분에게 체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지고, 그래서 나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이 되는지 생활 가운데에서 경험이 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체험을 나누고, 은사도 나타나고 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체험이 신앙을 보장해주지는 않고, 체험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그 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9절의 내용을 보면, 앞에서 4절의 “그들” 이라고 불린 3인칭 복수형과는 달리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라고 구별된 무리를 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도 못해서 헤메이는 자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분명히 더 좋은 것에 있는 자들이라고, 구원에 속하였고 구원 받은 삶 가운데 있음을 확신한다고 히브리서 편지를 받은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확인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더 좋은 것, 구원에 있는 자들인 것을 제가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은 그 좋은 것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이런 확신이 있다고 얘기했을까요?
그들에게는 뚜렷한 증거가 나타나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구원에 있고 더 좋은 것에 있는 증거는 바로, 사랑으로 섬김이 있다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무엇입니까?
무조건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상대가 유익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섬김입니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섬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섬김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써’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에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이 있어야 될 줄을 믿습니다.
섬김의 대상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성공했더라도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하거나 하나님을 모른다면, 제대로 된 섬김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섬김에는 그 대상의 영적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나의 섬김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종이 하는 행동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합니다.
그 방향을 잘 잡아야지, 무작정 희생하는 것이 옳은 섬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 잘 감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섬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한 주, 여러 만남의 관계에서 어떤 섬김을 원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그것입니다.
내 안에 부족하고 이루어야 할 것들 아직 많지만, 그것을 미루어 두고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바로 그것만 하면 되고,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섬김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장에서 세 분의 목자님들이 정말로 잘 섬겨주고 계시고, 이미 귀한 섬김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좋은 곳에 속해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사랑으로, 주님의 뜻대로 하는 섬김이 나타나야 하는 삶인줄 믿습니다.

두번째 증거는 무엇입니까?
11,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더 좋은 것에 속해 있음을 확신하는 두번째 이유는 약속을 받았기에, 약속의 내용을 상속받은 자들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약속이란 현재의 것은 아닌 미래에 이루어질 무언가를 얘기합니다.
현재 더 좋은 것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약속해 주신 것을 상속 받은 사람들은 미래에 가장 좋은 것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지금 현재 나는 더 좋은 것에 거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나는 가장 좋은 것을 현재도 기다리고 있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좋은 것들이 막상 죽고 나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좋은 것을 찾으며 살았는데, 죽고 나서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여러분 지금 이 땅 위에서 좋은 것을 찾아서 열심히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러나 또한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시고 약속해두신 가장 좋은 것을 취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을 약속해주신 분이신데, 사람들이 이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죽어봐야 안다고, 불신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읽은 뒤에는 13절부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약속 뿐만 아니라, 맹세까지 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제일 크고 확실한 담보인,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를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약속과 맹세를 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도 가장 좋은 것을 약속해주고 맹세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은 그 사람 마음대로이지만, 존재하는 것을 부인한다고 그것이 없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 약속을 잡기 위해서 11절 12절에는 두가지 태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부지런함과, 게으르지 않은 것입니다.
더 좋은 것에 머무르고 있는 자들이, 더 좋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완성을 바라볼 때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말라는 것은, 듣는데에 있어서 둔감하거나 못들은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해 믿음에 대해 들으면 갑자기 평소와 다르게 신중한 자세를 보이며 다음에, 아직 잘 모르겠다고,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는 것이 둔감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중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는데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을지라도, 둔감하고 믿지 않았기에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받으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어떠합니까?
자기가 계획한 것을 쉬지 않고, 온 맘을 다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그것만 바라보고 긴급한 마음으로 곧 이루어질 것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해주신 것이니, 나를 구원해주셨으니, 내가 구원의 기쁨과 감사함을 누리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가장 좋은 것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그런 기대하는 마음,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다른 것에 마음 두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이 오늘 하루 뿐이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고, 섬기고, 주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약속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며 달려갈 수 있는 그 태도를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의 성취입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정말 좋은 것을 주셨고,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이제는 우리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해보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살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긴박하고 최고인 것을 믿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는 여러분의 상상을 뛰어넘는 가장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확신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가장 좋은 것을 향해서 가겠습니다.
둔감했던 나의 태도를 버리겠습니다.
부지런히 찾겠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에서 특별히 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붙잡고 살겠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섬기며 살겠습니다.
바쁘고 힘들고 복잡한 것에 휩쓸려 살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곳에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
주의 말씀 앞에 벌거벗은 채로 섰습니다.
내 심령의 저 깊숙한 곳까지 숨김 없이 주님 앞에 다 드러내고 섰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찔림을 가지고 섰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주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꼭 이것만은 바로잡으며 바꾸며 살겠습니다, 라고 이 시간 주님 앞에 결단합니다.
이 결단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 줄 믿습니다.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