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합시다

2016년 2월 14일 주일 설교 요약
하박국 1장 12절-17절 말씀입니다.

북한이나 외국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있을 때에 손을 들고 분명하게 생각을 밝혀 발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임에서 질문을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믿음이 철저히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박국 1장 1절에서는,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생과 졸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남유다가 멸망할 즈음에 미리 경고를 하고 그 멸망을 지켜봐야 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그는 자기 나라의 중요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 묵시를 받았는데, 기도의 모습을 통한 질문을 했을 때에 그 묵시를 받았습니다.
3장의 짧은 하박국 본문을 보면 하박국이 하나님께 두 번 질문을 하고 하나님은 두 번 응답을 해주시며 마지막엔 찬양기도로 마무리되는 간단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하박국 선지자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대뜸 질문하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은 1장의 두 번의 질문의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 시작으로 그는, 탄식할만한 자기 주변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2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그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언제까지, 아무리 외치고 부르짖어도 아무 응답도 안하시고, 우리에게 아무런 일도 안일어나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보아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죄악, 패역, 겁탈, 강포, 변론, 분쟁 이런 것들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 악인들은 다른 민족도 아닌 자기 민족 내부의 사회 지도층을 얘기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패망하고, 남유다 역시 패망할 때가 되어서 사람들이 사는 작태가 이러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남유다의 멸망 수십년 전에는 요시야왕이 사회와 지도층을 개혁하고 종교를 개혁하는 업적을 남깁니다.
그가 지킨 유월절 역시 좋은 평을 받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여러 악한 일들을 폐하는 개혁을 하였으니, 일반 사회의 퇴락한 풍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풍조로 인하여 가정도 종교도 모든 것이 몰락한 것을 선지자는 목격하였습니다.
4절에서 얘기하듯 우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어야 하는데 율법이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정말 계신 분 맞습니까,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이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무너진 곳에서 많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십니다”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비롯하여 곳곳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없고, 우리 가운데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답답했던 것입니다.
2절부터 4절까지는 선지자의 첫번째 질문이자, 하나님께 대한 탄식, 불평입니다.
그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평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분명히 불평이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질문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잘못 질문하다 그것이 불평이 되면 어쩌나 염려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면 큰일난다고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평하지 않으며 하나님 뜻에 잘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습니다.
불평은 안하고 살지 모르지만, 가만히 보면, ㅎ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괘씸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교회를 다니든 안다니든, 내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말든, 오늘 내가 사는 인생이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상관 없이 하나님께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여 불평하였기에 40년 광야를 헤매었던 그런 불평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 불평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지 않고, 불신하고, 지키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편하고 빠를 것 같아서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불평입니다.
그들의 불평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셨던 것입니다.
그와는 다르게 선지자는 지금 왜 불평하고 있습니까?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가 없어서,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 땅 가운데 임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배운 사람입니다.
그는 시대와, 자신의 민족에 대한 관심과,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열심히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응답이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 앞에 질문하고, 다시 탄식하는 마음으로 불평하며 질문하는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의 아픔까지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매일의 삶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하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이 일이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왜 내 인생 가운데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합니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마음으로 불평하며 질문하셔도 괜찮습니다.
탄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불평하며 질문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질문하고 불평하고 탄식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떤 응답인지, 그 내용이 5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내용을 보면,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점입가경입니다.
네 기도에 응답하여 알려주는데, 네 형제를 멸망시킨 앗수르보다 더 무서운 바벨론 군대를 일으킬 것이다.
사납고 무서운 맹수와 같아서 그들 앞에선 성벽도 소용 없을 것이고 정말 포악함이 무엇인지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될것이다.
라는 응답하심, 내 의도대로의 응답이 아닌 갈수록 태산인 내용입니다.

선지자의 입장에선, 괜히 하나님께 질문했다, 가만히 있을 것을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을 잘 생각해야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가, 하나님께 불평으로 비춰질까봐였다면 두번째 이유는, 질문 해봐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훌륭한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께 좋은 소리 못듣고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지는데, 내가 왜 질문하며 살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응답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고 타고난 논리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논리에는, 그가 어려서부터 배운 하나님의 모습, 바른 성경 지식이 각인되어 있기에 하나님께 되려 이렇게 얘기합니다.
12절부터 14절의 내용입니다.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도 죽지 않고, 정결하신 하나님, 악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우리보다 더 악한 인간들이 괴롭히는 것을 그냥 보고 넘기시려 하는 것입니까?
제가 배운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신데, 제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군보다 더 악한 바벨론 군대라면 정말 사람을 고기처럼 잡아 죽이는 무자비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훈련시키신다고 이들이 우리를 짓밟도록 내버려두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나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악한 사람이 나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감정으로 하박국 선지자는 다시 질문, 자신의 논리와 지식으로 하나님께 따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따질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으로 침묵하기보다는 이런 사람들이 더 정직하고 믿음의 성장도 빠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의 논리 속에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논리에 하나님을 가두거나 하나님을 이겨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져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동의 없이 대언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감당하는 종으로서 하나님께로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져서 하나님을 따르고 싶고 좋아하고 동의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으로 먼저 고백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역보다 먼저 관계라는 말처럼, 예배 이전에 예수님이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으로 그 분의 하시는 일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그러면서도 질문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교회만 열심히 다닌다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질문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선지자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질문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따지고 불평하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두번째 질문을 하고 그는 2장 1절의 내용처럼 작정하고 성루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응답하시지만, 수학 공식처럼 대답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내게 다가온 대답이 아닐지라도 그 음성으로 인하여 심경이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오늘과 다음 주 본문을 통해서 계속 우리에게 들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질문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때로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그냥 하나님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질문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잘, 열심히, 때로는 불평하며 때로는 따지며 질문할 수 있는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