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패했을까

2016년 2월 7일 주일 설교 요약
누가복음 9장 37절-4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시간을 보내시고 측근 제자 3인이 그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산 아래로 내려오시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는 것에 실패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열두명을 특별히 불러주셔서 이 전까지 많은 것을 행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군대귀신 들린 사람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으며, 누가복음 9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파송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병 고치는 능력을 예수님께서 주셨고, 열두명이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한 모습이 6절에도 나옵니다.
그 파송부터 오늘 본문까지의 내용 사이에는 약간 시간이 흘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자들의 이런 상황은 좀 심각합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이 아이가 귀신들린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나옵니다.
아이가 고통받는 것에 마음이 아픈 그 아버지는 희망에 찬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리를 비우셨다고 하자 그 제자들에게 치료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실패했고, 예수님께서 그 실패의 원인을 알려주십니다.
37절부터 41절 말씀을 봅니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그 실패의 원인을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한심하다는 정도의 말씀이 아닌,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악한 세대,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동하지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
비뚤어진 마음, 목이 곧은 백성, 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고 마음이 굳어있는 모습을 크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 큰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야단치시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주님께선 아이가 치료 되었느냐를 따지시기 이전에 너희 안에 믿음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그래서 잘못했고, 그래서 실패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음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악하고 꼬인 세대란 특정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도 알지 못하며 뒤돌아서서 잊고 자신의 살던 모습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입니다.

오늘 제게 말씀하셨으니 제 삶을 바꾸겠습니다, 라는 결단과 노력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당초 바꿀 마음이 없는 이 세대를 예수님께서는 패역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그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의 찔림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삶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과, 빨리 다시 내 생활로 돌아가 바쁘게 예전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입니다.

평행본문인 마가복음에는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있는데, 9장 2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 부터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패역한 세대는 이 아버지의 모습처럼 믿음을 달라고 요청해야합니다.
자신의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살고자하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눈 앞에 고통스러운 문제가 놓여있더라도 주님께서는 믿음, 주님과의 관계를 먼저 요구하십니다.
기적만 요구하는 사람, 문제 해결만 요구하는 사람은 그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주님과 이별합니다, 아무런 관계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먼저 믿음을 요구하시고,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 이 아이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시고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맺어져있는, 믿음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삶 속에서 여러가지 힘든 문제가 있을 때에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먼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봅니다.
마가복음 9장 28절을 읽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고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믿고 싶은데 안믿어진다는 사람들, 그럴 때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믿음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향한 내 마음속에서 불신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면서 내 자신 안에 있는 그 무엇,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 이 패역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믿음을 위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KJV 성경에 보듯이,
And he said unto them this kind can come forth by nothing but by prayer and fasting.
기도와 금식으로 이런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귀신 쫓는 일 하나도 믿음으로, 기도로, 때로는 금식하면서 자신의 패역한 마음을 먼저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식과 기도로 자신의 연약함을 해결하고,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세번째 이유로 그들이 왜 실패했을까를 봅니다.
누가복음 10장 본문에서는 70명을 파송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70명이 이전의 12명 파송 때처럼 많은 일을 행하고 돌아와 승리의 소식을 전합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0장 21절을 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있다는 자들에게는 숨기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사람들에게 나타내주심에 감사하고 계십니다.
주님도 감격에 차서 감사의 기도를 하시는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실패는, 어린아이와 같이 비어있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혜로운 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해 비어있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경험 정도면 되겠지, 라는 자세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높아진 마음,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신앙생활이 정말 힘듭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높아진 부분이 있다면, 비어있는 마음이 없다면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오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행하는 너희는 참 복되다고 더욱 축복해주고 계십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고자 하는 비어있는 마음을, 잘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기에 살면서도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볼 수 있는, 복된 것입니다.

삼일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영혼이 복된 자들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비어있는 그 마음이 복되다고 축복해주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