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일 주일 설교 요약
다니엘 7장 1절-15절 말씀입니다.
문명 충돌에 대해 얘기한 새뮤얼 헌팅턴이라는 사람의 제자인 “파리드자카리아”라는 작가가 2008년에 “흔들리는 세계의 축”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앞으로 미국은 절대 강국의 위치를 신흥국가들과 나눠 갖게 될 것이다, 미국은 긴장해야 한다는 충고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이 강국으로 떠올라서 유럽의 권력을 가져갔고, 요즘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견고한 강대국입니다.
약 100년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데, 최고라는 자리는 언제나 도전을 받고 무너지는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 혼란의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것과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크고 작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는 이민을 가기도 하고 비즈니스를 시도하기도 하며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우리는 그 옛날의 혼란의 시대를 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다니엘은 벨사살 원년에 환상을 보았다고 (1절) 기록되어 있습니다.
벨사살 왕은 5장에 등장했던 그 왕입니다.
그러니 시대적으로는 아직 신바벨론 시대에 있습니다.
이 환상은 다니엘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2절-8절)
8절까지의 장면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고 천지사방에 조용한 것이 없고 큰 바다로 몰려 부는 바람 – 혼란을 상징하는 바다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절 이후에는 네 짐승이 나타나는데 각각 모양도 다릅니다.
사자와 같고, 곰과 같고, 표범과 같은 짐승들이 나타나더니 네번째 짐승은 형용할 수도 없게 무서운 모습입니다.
이 짐승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보았던 신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네 큰 짐승에 대해 해석하기를, 네 왕, 네 나라라고 얘기합니다. (17절)
현존하는 바벨론에 이어서 일어날 메대와 바사 제국,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환상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니엘은 굉장히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15절)
>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다른 왕이 본 꿈은 잘 해석했지만 자신이 본 환상에는 번민하는 다니엘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70년이 끝날 때가 되어서 드디어 민족의 해방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환상에서 보인 것입니다.
이 나라가 끝나면 더 강하고 무서운 나라가 일어난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벨론은 대충 100년, 메대 바사는 200년, 헬라제국은 한 300년 지탱했지만, 로마는 1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속한 제국입니다.
혼란한 세상은 늘 성도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무엇을 원합니까?
만족? 평안?
성도는 세상을 보며 그런 것을 얻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성경 말씀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21절)
>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5절)
작은 뿔이 일어나서 성도들과 싸워 이겼다고 나옵니다.
혼란한 세상은 늘 나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믿음의 길로 가도록 두지 않고 떠나게 만듭니다.
무서운 박해는 오히려 성도들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 바라보고 천국을 보는 신앙 가지게 만듭니다.
오히려, 안정적이고 잘 살고 편한 것을 찾는 성도들의 마음을 틈타서 세상은 성도를 교회에서 떠나게, 교회를 불편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나의 앞길을 보장하는 것은 믿음 보다는 발 빠른 나의 판단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혼란한 세상을 봐도 그 혼란함이 느껴지지 않는 마비증상이 오게 됩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환상을 보았을 때 번민이 가득했지만, 다니엘처럼 주의 날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동역자들 명단에, 데마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라고 하는데, 이는 지금도 아테네 다음가는 도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 곳은 타락한 곳 어둡고 혼란한 곳이지만 그것을 볼 영적 눈이 없는 사람은 그 곳으로 가버립니다.
성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눈이 있는데, 세상을 바라볼 때 그 혼란함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로 이어서 본 또다른 환상에는 왕자를 보니, (9절) 내가 또 환상중에 보니 (13절) – 두개의 환상을 다시 더 보게 된 것입니다.
첫번째 이어서 본 환상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과 그 법정을 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보좌 앞에서는 심판을 베풀고, 책이 있다고 나옵니다.
11절 이하에는 영원하신 존재에 의해 짐승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의 장면이 나옵니다.
또 연이어서 본 환상에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오고, 그 분으로 인하여 모든 영광과 권세를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혼란과 공포로 몰아 넣었던 그 권세조차도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모습, 하나님께서 성도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혼란한 세상 가운데에서 성도가 살아가는 방법은, 또 다른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혼란만을 보고 그 안에서만 살 것이 아니라 다니엘이 그러하였듯이 (28절) 마음에 그 환상을 간직합니다.
혼란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일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의 끝을 아는 사람은 혼란스럽고 당황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계속 이어지는 혼란 때문에 번민과 절망이 오더라도, 그 혼란함 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보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세상은 혼란스러운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 너머를 보고 나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보며 살아가는 성도가 승리하는 성도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려움, 혼란이 닥치더라도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환상을 볼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 보니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 보니까,
그냥 거기에 눌려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부화뇌동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러나 우리에게 또 다른 믿음의 눈을 주셔서,
종국에 다가오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승리를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