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1절-1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나라로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국가적 차원 이전에 개인적으로도 예루살렘에 언약궤를 가져다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알레유다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기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처음에 실패하고 난 후 두번째 시도를 통해 성공합니다. 그렇게 갈망했던 일이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새 수레입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좋은 수레를 사용해서 귀한 언약궤를 옮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수레로 옮기는 방법은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옮길 때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막대기를 꿰고 어깨에 메어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불편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예배에 중심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예배 속에 살아계시고 그 예배를 받으시는 주인공이 되도록 해야 마땅합니다. 우리의 열심과 행위만 남아 있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일로 인해 언약궤는 잠시 석달 정도 오벧에돔에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온집에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생각지 않았던 오벧에돔에게 복이 흘러 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복일까요? 역대상 14장에서는 오벧에돔과 그의 소유에 복이 있었다고 합니다.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에 복이 있었다고 한다면 확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현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이런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왜 이런 복을 받았을까요? 만약 언약궤 존재 자체로 복을 받았다면 이런 일들은 진즉에 블레셋 땅에서도 있었어야 합니다. 오벧에돔은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율법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언약궤를 모셔놓고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언약궤의 뚜껑, 속죄소입니다. 율법을 덮고 있고 하나님의 자비를 말해주는 속죄소를 바라보며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고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있는 은혜 속으로 들어갈 때 누구든 복 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을 옳게 예배하는 자에게 오는 복을 다윗 대신 보여주고 있습니다.
질문) 나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기 위해 결심한 내용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