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주일을 준비하는 지난 한 주는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기 보다는 몇 가지 일들이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동성애 우편 투표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호주 사회 돌아가는 전반적으로 분위기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과 발표를 듣고 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습니다. 우편 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정치인들도 이런 저런 눈치를 보고 섣부르게 법안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편 투표 결과를 빌미 삼아 찬성이든 반대든 정치하는 사람들은 책임 회피를 하며 동성애 합법화 과정을 밟아 나갈 것 같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이해는 작년에 실었던 칼럼을 통해 말씀 드렸습니다. 간단히 한 번 더 상기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문화적 틀을 수용하는 듯 하면서 점점 역사가 흐를수록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로 보이는 것 중에는 노예 제도, 일부다처, 남녀 차별 등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서 주요 인물들의 생활상에서 나타난 것일지라도 그것 자체로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내용이 성경에 담겨 있다는 자체로 성경의 허락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비록 당시의 보편적 문화 생활상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있지만 점차적으로 성경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노예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하고 축첩을 통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시작부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동성애의 문제입니다. 레위기 18장에는 동성애의 문제를 근친상간, 짐승과의 성관계, 자녀를 제사 제물로 드리는 문제들과 같이 취급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성에 대한 개인 취향의 문제나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다른 문화로 여겨서도 안됩니다.
물론 성경을 말하는 크리스천들이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정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잘못한 사람을 법의 틀에서 단죄하고 벌을 가하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훈련은 관심과 사랑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일반적인 범죄자이든 동성애자이든 상관없이 회개와 변화의 기회를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기도하며 돕는데 있습니다.
거대한 시대의 조류 속에 큰 파도를 한 방 맞은 느낌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위해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