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7일 주일 설교 요약
다니엘서 3장 말씀입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느부갓네살 왕이 명령해서 금으로 만들어 세운 거대한 금 신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각 나라의 문화와 정치적 배경에 따라 여러 거대 신상을 만들어 국론을 통일하려는 노력은 흔한 일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금 신상을 만들고는 낙성식에서 모든 문무백관을 불러서 절하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불복종하는 자는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에 넣고 뼈 채 녹여 다 죽이겠다는 엄중한 명령을 내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절을 했지만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을 제외한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은 절을 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이 고소를 합니다. (8절)
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 기적의 능력을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1장, 2장)
그것에 대해서 느부갓네살 왕은 이미 자신의 입으로 그 능력을 인정하는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만,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으로만 인정한 것입니다.
기적과 같은 사건은 중요한 싸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여러 은사,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고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늘 비추어 보고 계속해서 인격적인 부딪힘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완성되어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보고, 직접 체험해서 알았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복종의 사건을 경험하자 무섭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엄한 느부갓네살 왕의 말에, 이 세친구의 대답은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16-18절)
왕이여, 우리가 대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의 행동과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치적 문화적 이유로 강요하는 이 절차에 불복종하는 이 세 친구는 누가 보기에도 아주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들어주는 시늉만 하고 전도와 선교를 계속하려는 타협의 자세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헷갈리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얼마나 잘 타협하는가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그 분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문화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타협은우리에게, 하나님 뜻을 묻지 않고 변개시키는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국민의 안녕을 담보로, 충성의 이름으로,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문화라는 핑계로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에게 신앙을 헷갈리게 하며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회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문화를 철저히 감시해야 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혹여 그 죄인들을 닮을까 보아서, 가나안의 민족들을 몰살시키라는 명령을 하신 하나님의 아끼시는 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문화, 성경의 문화를 이루라고 부탁하신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지으신 목적이자 흔히 말하는 창세기의 문화명령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이 세상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세상 문화를 제대로 감시라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에는 NO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16-18절)
세상을 향해서 헷갈리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헷갈리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풀무불일지라도 우리를 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만 되는것,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우리는 순종합니다.
이렇게 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도 전혀 일말의 타협점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불구덩이 속에 같이 들어가셔서 이들을 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25절)
그들이 하나님께,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성공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신앙입니까?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님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런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서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고민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손 절대 놓지 않으시고, 그냥 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셨을 때 이렇게 정말 아까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대충살면서 신앙생활 하지 아니하고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보석과 같이 여기는 길인가 고민하면서 그 길로 갈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행여 그것이 두렵거나 어려울지라도 하나님, 우리의 마음이 결정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해주시는줄 믿습니다.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내가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라는 담대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