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의 내가 나인가?

‘퓨처 처치’ 책을 읽으며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과연 어느 시점의 내가 진정한 자아일까? 많은 사람은 현재의 내가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 사역을 하며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의해 결정된 자신으로 살아갑니다. 특히 유아기의 경험이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발달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의 미성숙한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때 받은 상처에 묶여 오랜 세월 영향을 받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매여 살아간다면 참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지금의 환경일 것입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등에 따라 자신을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누구일까요? 대부분은 모른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저 별일 없이 살아가는 정도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의견에 동의한다면, 많은 사람은 과거를 바라보며 후회하고, 현재의 환경에 불만을 품고, 미래를 생각할 때는 불안해하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퓨처 셀프(Future Self)’, ‘퓨처 처치(Future Church)’라는 말이 제 가슴을 뛰게 만든 이유는 미래의 내가 과거나 현재의 나보다 더 본질적인 자아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나 현재를 부정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래의 나를 막연한 가능성 정도로 여기며 살아가는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에 의해 더 강하게 규정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성경적인 관점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요한일서 3장을 설교하면서, 비록 자세히 다루지는 못했지만 신앙의 성숙은 미래의 소망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곧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게 될 미래를 바라볼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전에 없던 품격이 생기고 신앙의 변화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 계시지만, 나의 정체성을 과거·현재·미래 가운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묻는다면 저는 미래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과거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 많지만, 미래는 내가 책임 있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래는 이미 정해진 각본이 아니라 아직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와도 같습니다. 도화지만 보면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미술을 싫어했던 제가 미래라는 하얀 도화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