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기도하는가?

2015년 8월 23일 주일 설교 요약
다니엘 9장 1절 – 19절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기도라고 하면 부담, 어렵고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만,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6장에서도 다니엘은 사자굴에서의 어려움 가운데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는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의 수단이고,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집에 돈이 많이 쌓여 있어도 쓰지 못하고 거기에 묶여서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딱한 일이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은혜의 수단을 잘 누리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6장과 9장에 나오는 다리오 왕을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연대를 측정하는데에도 혼돈이 올 수 있습니다.
70년이 차고 그 연수를 깨달아 기도하는 이 장면을 보면, 에스라에 나오는 다리오왕이 아니게 됩니다.
기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벌써 돌아간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니엘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금식하고,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즉, 기도하는 자가 심각한 상황, 마음에 큰 아픔이 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가운데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방인 니느웨 왕도 이렇게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듯이, 상당히 곤란하고 힘든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어떤 때에는 감사하고 평안하고 기쁜 가운데에서 하게 됩니다만, 어떤 때에는 이렇게 금식하고 베 옷을 입거나 옷을 찢고, 슬픔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이럴 때가 우리에게는, 사람이라면, 가끔 닥칩니다.
그래서 기도가 은혜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른 사람이라면 이런 답답한 일이 닥칠 때에 넋 나간 사람처럼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바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탄식하면서 기도합니다.
성도는 이럴 때에 바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 있을까요?
연세가 많이 드시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 연륜이 쌓여서 작은 일에는 놀라지도 않을 다니엘입니다.
그런 다니엘이 마음 속부터 깊이 슬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다니엘이 기도한 이유 첫번째가 나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신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말씀을 읽고 나서 감동이 되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읽은 것이 자기의 삶 속에서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뜻이 보여지고,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보여지기에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주의 말씀을 잘 듣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기도하는 것은 목사의 잔소리도 아니고 기독교인의 종교적 요식행위도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눈 앞에 사람을 두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외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더 나아가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어떴습니까?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오늘 말씀처럼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25장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에게 포로가 되어라,
예레미야 29장의 말씀, 70년이 차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읽자,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됨입니다.
용서의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마음으로만 기도한다면, 내 마음 속의 거리낌을 없애기 위해, 내 기분을 맞추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의 죄들이 드러나고 또 사라진다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이 복음이 믿어지고 삶으로 고백되어질 때에 용서를 위한 기도도 효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보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그는 왜 기도했는가 두번째 이유를 보겠습니다.
5절 이후로는 이제 회개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패역하였고, 주의 법도를 떠났고, 말씀을 듣지 않았고, 죄를 범하였고, 악을 행하였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그의 회개의 내용은 그저 잘못했다고 용서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에 대해서 배신하고 하나님을 싫어했다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다니엘의 회개는 단순한 후회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짚어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원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이제 나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눈물로 잘못을 뉘우칠 때에, 뭐가 잘못된 것인지 철저히 깨닫는 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슬퍼서, 그냥 죄송한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꼬여있고 처참한 환경에 있을 때에 (12절, 16절) 풀 수 없는 문제 때문에 힘들 때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있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 누구의 잘못 때문이든, 이제는 원래로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그 잘못된 길로부터 하나님의 길로 돌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번째로, 왜 기도했는가를 17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찾아보겠습니다.
잘못된 상황을 돌이키는 그 주체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를 의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는 기도를 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에 이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해봐야 안된다는 그런 마음,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섭리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기도의 사람을 찾습니다.
9장의 기도의 맥락을 다시 보면 어떻습니까?
다니엘이 여러 왕을 거치고 70년의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자, 곧 때가 되었다는 감동이 있는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쉽게 생각하자면 과연 기도를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인데, 내가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때가 가까이 오자 기도했고, 금식하며, 민족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주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께서는 잘나고 똑똑한 일부만을 통해서 섭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섭리에 동참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 그들을 통해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가 위대하다는 것이 바로 그래서입니다.
우리 스스로만은 힘이 없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돈이 있거나 세상의 정치 권력이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지금 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큰 위력의 무기를 가졌는데,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도로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삼일교회 성도 하나 하나가 일당백의 능력을 가진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시작하세요.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범하게 보이는 성도를 통하여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우리 삼일교회 성도님들이 그런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