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으로서 조문하기

생명이 잉태되고 혹은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것이 우리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성인이 되면서 상을 당한 유족들을 조문할 기회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곤란을 겪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죽음 이후 새로운 세계에 대해 가르치고 믿고 따르지만 큰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그 때마다 고민하던 기억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에 맞게 유족과 함께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의 과정은 유족 중심입니다. 죽은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생전의 삶을 추모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거나, 명복을 비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맞지 않습니다. 명복冥福이라 함은 한자 그대로 어두운 세계에서 복을 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봉투 혹은 조화에 글을 쓸 때, 믿음이 있었던 분의 장례라면 ‘부활 소망’ 혹은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쉽게 풀어 쓰곤 합니다. ‘근조謹弔’ 라는 단어도 삼가 슬픔의 뜻을 표한다는 뜻이니 슬픈 일을 당한 가정에게 타당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뜻의 ‘조의弔意’ 혹은 그리움을 표현하는 ‘추모追慕’ 라는 표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천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 라는 식으로 판단해도 옳지 않습니다. 성경은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12:15)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일 큰 위로는 힘든 시간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신앙 생활하면서 마음에 가장 힘을 얻게 되는 순간이 어려울 때 공동체가 함께 해주는 시간일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선 장례 예배를 통해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 길이 우리도 다 가야 하는 길이기에 이 때가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