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겸손한 사람 (잠언 3:34)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제 신앙적 체험을 여러분들께 고백하는 이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집 센 저의 모습이 시드니에서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때와 한인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삼일교회에서 목장에 출석하는 때 각각 어떻게 달라졌는지 제 스스로 느낀 점을 나누고자합니다. 빨리 읽도록 하겠습니다.
간증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보니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0분 정도의 길이로 간증을 준비해달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제일 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바로 두 달 전에 이 자리에서 간증했던 내용이 녹음된 mp3 파일을 다시 재생해본 것이었습니다. 내가 글을 얼마나 적었고 그걸 읽는데 몇 분 몇 초가 걸렸는지를 확인해서 이번에는 10분 분량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혹, 궁금하신 분이 계실 수 있으니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지난번 제 간증의 길이는 7분 20초였습니다. 칠백두 단어였고 빈 칸 포함해서 이천팔백팔십일곱 글자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대체로 고지식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는 원리원칙주의자입니다. 극단적인 테러리스트가 연상되는 무서운 단어, 근본주의자, fundamentalist 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규범, 가이드라인, 그런 것이 있다면 가능하면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커피를 만들어 먹으려 할 때에도 항상 사용하는 바로 그! 티스푼이 있어야 합니다. 융통성이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맘 속으로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부립니다. 어쩔 수 없이 제 뜻에 반대되는 결정에 따르게 될 때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저게 아닌데, 그러면 안되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럽니다. 같이 사는 가족들이 좀 힘들겠다, 싶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꽉 막힌 성격 때문에 저는 신앙생활도 답답하게 지내왔음을 고백합니다. 호주 시드니에 오고 2, 3년 지난 후부터 저의 개신교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는데요, 결혼한 후에는 함께 교회에 나가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유권자들을 향해 공약을 발표하지 않습니까? 저도 청혼하면서 아내에게 그렇게 약속했었습니다. 자가용 차가 없던 시기였는데 집에서 가까운 한인 교회를 교민잡지에서 찾아낸 후에 버스를 타고 도보로 꽤 걸어서 방문했더니 제 발로 찾아온 새신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많이 반가워하며 모든 분들이 다 환영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저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트집을 잡으며 작은 교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들로만 가득 찬 장소를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좀 허황된 기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교회로 옮겨갔지만 거기서는 저에 대한 관심을 못견뎌했습니다. 요즘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쓰는 저와는 아주 반대의 모습이죠? 그냥 나 혼자 내버려두면 맘 편하게 잘 먹고 잘 노는데 내 삶의 영역으로 누군가가 침범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니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교회를 나가지 않다가 나중에는 결국 선택한 곳이 호주 현지 대형교회였습니다. 거기서는 아무도 저에 대해 알지 못했고 제가 처음 온 사람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도 몰랐으니 전혀 간섭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제가 스스로 새신자 등록을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아주 마음에 드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과도 서로 개인적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며 교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고집대로 내 가치관을 굽히지 않으며 하나님을 내 기준에 맞춰 믿으며 만족스러워 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곧 여러가지 환경의 변화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그에 따라 집도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여러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호주로 와서 살게 되며 그들과도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다시 집 근처의 한인 교회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은 계속 가지고 있었고 또 몇 년간 지속적으로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는 계속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좀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어도 그냥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혼자 잘나서 세워 놓은 기준에 좀 미흡한 것처럼 보여도 대충 맞춰줘가면서 교회는 계속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저녁에 어디로 와서 모임을 가지자고 하면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예배 시간에 좀 어색한 순서가 있더라도 박수치고, 손 마주 잡고, 인사하고, 노래했습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라도 어쨌거나 맞장구는 쳐준다, 뭐 이런 심산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오만하고 저 혼자 잘난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제게 제가 생가하지도 못한 큰 선물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내 기준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예배 시간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억지로라도 흉내를 내기 시작하자 마음이 겉모습을 따라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신앙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던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임 참석도 기다려졌습니다. 수동적으로 참석하던 모임이었는데 이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따라하니 생각이 바뀌고 그로 인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순환작용을 경험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가 배우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내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해주시는구나, 격려해주시는구나,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자 연이어서 용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게 제일 중요한거지, 내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거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나 혼자의 지레 짐작일 뿐이구나, 설령 누가 나를 한심하게 여긴다고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노력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내 눈에는 어리숙하고 유치하고 한심하게 보였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 이렇게 하나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행위였구나, 믿음의 섬김이었구나, 이렇게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기쁨으로 드리고 있었는데 나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비평가처럼 팔짱끼고 코멘트나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적 가치관이 변화를 거치게 되자 예전에는 참 이상하게 보이던, 크게 소리를 지르며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도 더 이상 제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의 대규모 합창단이 대학 교수의 지휘를 따라 반주하는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화음으로 찬양하는 것이 내 귀에는 더 좋게 들릴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라면 누구의 것이나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규모나 함께 모이는 성도들의 외형적이고 세상 기준으로 내세울만한 자랑들 혹은 단점들은 이제 제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저는 삼일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좋은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기뻤지만 대충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공감하며 만남을 가지는 기회가 적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계속 세뇌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주일학교 가는 어린이도 아니고, 나에게 교회는 친구 만나서 놀려고 가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그런데 가정교회로 모이고 목장 모임을 시작하게 되자 이런 아쉬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목장에는 저와 비슷한 나이의 친구도 없었고 구성원의 직업도 달랐고 제가 조카나 아들뻘인 나이였지만 저를 가족처럼 살뜰히 챙겨주시는 장로님 권사님의 다정한 섬김에 제 마음이 녹아들었습니다. 지난 번 간증에서는 저비용 고효율 미식 기행 평신도 세미나를 소개했다면 이번 간증에서는 우리 새터목장의 식탁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과 함께 삶을 나누고 아이들을 손녀들처럼 예뻐해주시고 아이들의 합창단 행사가 있을 때에는 꽃다발을 챙겨서 보러 와주시니 일가친척 없이 타지에서 지내는 저희들에게,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국에 계셔서 그 정을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랜 신앙생활의 연륜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언을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0분 넘어가서 죄송합니다, 이제 마지막 몇 줄 남았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고 누구보다 내 가족만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자기 중심적인 저에게는 하나님이 막연하게 먼 곳에 계시는 분으로 느껴졌지만 나보다 남을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모두가 소중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주님께서 내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 모두가 내 가족이고 이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과 주어지는 것이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저를 행복한 신앙의 길로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삼일교회에서 저를 이끌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같은 방향을 보는 동역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서로 사랑을 계속 나누는 복된 삼일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축복의 말씀을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