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29절-40절 말씀입니다.
그리 유명한 사사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딸을 제물로 바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사 입다에 관한 내용입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오게 해 주시면 내 집에 제일 먼저 나오는 자를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라는 서원을 합니다. 사사로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절신한 순간은 없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물의 모든 것을 태워서 드리는 번제로서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하나님께 간절함을 가지고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그토록 혐오하시는 인신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인신제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이방 종교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입다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이율배반입니다. 간절함과 혐오 라는 이율배반의 모습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길르앗 장로들로부터 사사로 추대를 받을 때부터 뛰어난 외교술을 보여 줍니다. 영토 문제로 시비를 거는 암몬을 상대로 하여 역사적 근거로 조목 조목 반박하며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그 후에 전쟁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지는 순간 그는 사사로서의 삶은 끝입니다. 인정 받아야만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정 받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에게까지 이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동원하면서 하나님께 잘 보이고자 합니다. 사람은 인정욕에 매달리는 순간 탈이 납니다. 과한 인정욕은 분별을 잃게 만듭니다. 때론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으로 인해 의로운 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더 인정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를 헌신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가장 헌신하는 관계인 가족을 생각해 보아도 인정 받기 위함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적으로 행동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있기 때문에 효도도 합니다. 하나님께선 추대 받은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그를 사사로서 추인해 주십니다. 그가 창녀의 소생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도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면 인정욕이 아닌 사랑의 확신 속에서 살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날 정말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 내가 가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고백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확신 속에 헌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질문) 여러분은 현재의 모습, 현재의 신분, 지금의 재물 등을 생각할 때 사랑의 확신이 고백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