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8일 주일 설교 요약
에스라 9장 1절-6절 말씀입니다.
본문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제 성전이 제대로 운용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시점에 대다수의 백성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납니다. 헷, 브리스, 여부스, 아모리 등의 가나안 사람들, 암몬, 모압,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과 통혼을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에스라와 함께 의논을 하는 리더 그룹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민족 차별을 말씀 하진 않지만 본문의 말씀은 그 너머의 특별한 문제가 일어났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선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통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오랜 역사 동안에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상 때부터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와 종교를 형성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가 망해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와 그들과 다시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게 된 것입니다. 호주식으로 보면 다문화를 이루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과 다른 종족과 살면서 그들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환경을 핑계를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문화와 종교는 존중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관심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닥친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로 바뀌게 되는 결과로 낳기 때문에 에스라는 슬픔과 극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 백성들이 무덤덤하게 이런 일을 행하고 있는데 에스라는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6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겠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향해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라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실재감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공동체에 일어나는 사안에 대해서도 바로 자기 감정 표현이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종교적 관계로 치부하고 사는 동안 그는 하나님을 향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삶은 기쁨과 슬픔도 감사도 불평도 하나님과 함께 나눌 줄 아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좋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 실재적인 생활을 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자랑도 부끄러움도 하나님과 함께 나누면서 믿음의 성숙함을 맛보기를 바랍니다.
질문)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일로 죄송함을 느끼며 어떤 일로 기쁨을 나누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