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8일 주일 설교 요약
고린도후서 5장 11절-17절 말씀입니다.
복음 A/S 세번째 시간인데, 내 삶의 이유가 되신 주님을 고린도교회 통해서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열심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첫번째 편지를 보냈을 때에는 그 서두에,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좋은 언변이 있었고 지식이 풍족하며 많은 은사들이 나타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컸다고 하였습니다.
언변이 좋다는 것은 그냥 말을 잘 하고 토론을 잘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에 기독교가 왜 옳은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등을 잘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즘 얘기로는 전도하는데에 부족함이 없이 말로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기에 그들로 인하여 감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이 풍족하다는 것 또한, 많이 배우고 학식이 많은 것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구약 성경 등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라는 얘기입니다.
또, 많은 은사들, 방언 등의 은사가 많이 나타나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 나타나심이 있었고, 더군다나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지만, 또한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깊은 근심을 주었는데,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의 말은 믿으면서도 사도 바울의 말은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열심은 요즘의 교회에 뒤지지 않고, 은사와 언변과 지식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어떠한 분으로 믿었는지, 그것을 우리는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 나름대로의 예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에 내 안에 구원의 확신,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을 믿고는 있으면서도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은 천국행 티켓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 내가 아무 걱정도 없이 맘대로 살아도 좋다는 표시가 아니고, 그렇게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가야 할 곳을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 이 티켓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1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 완전히, 100%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똑같이 예수 믿고 나서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확실히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환경, 사건, 상황, 감정의 차이 등등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상관 없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 생활을 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의 다 그런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 설명을 감격에 차서 전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를 비교해서 얘기합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인생으로서의 나 자신, 나의 아내, 온 세상을 보았을 때에 신기한 그것과 같은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고 감격에 차서 말하고 있습니다.
극적인 사건, 감정의 많은 변화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분명히 깨달아 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공통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뭔지, 첫번째 이유를 14절 15절 말씀에서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새로운 피조물은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죽으셨다 살아나신 분을 위해 사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내 안에 있던 죄의 영향력,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죄의 힘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은혜의 현상입니다.
죄라는 것은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을 빼버리고 내 인생의 주인을 나로 생각하며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가장 근본적인 죄입니다.
나의 근원이 하나님이신데,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모든 죄의 시작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고, 모른척 하고, 부인하고, 인생의 주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의 죄의 힘이 없어졌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위해 살 수 있고, 그를 위해 사는 것이 맞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분,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 때에는 주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뭔지 모르고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욱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편 23편 3절의 말씀을 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그 분 자신의 성품과 영광에 걸맞게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고, 그 인도하심을 받을 때 나는 주님을 위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내 평생을 통하여서, 주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개 능력도, 시간도, 힘도, 재정도 없지만 내 인생의 주인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구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공통된 이유 두번째는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만난 우리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의 말씀을 따르자면, 우리는 아무도 세속적인 기준을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예전과 똑같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살아간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아닙니다.
육신을 따라 아는 것, 세속적인 잣대에 매여 사는 것, 세속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하는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그 기준을 버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가 바라볼 것은, 고린도후서 4장 마지막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금방 끝이 날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대로 완전한 회복과 주의 성취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라는 것입니다.
머물다가 떠날 이 세상은 잠깐일 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니, 그날을 고대하고 바라보며 사는 그 사람이 육신을 따라 알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을 탈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만 육신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을 내 삶의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 주인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보이는 세상이 전부였고 삶의 이유도 나 자신이었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내가 원하는 삶보다 주님께서 원하는 삶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하나님과 천국과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고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 너머를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의 인생을 어디로 이끌어주시는가 생각하고 평생의 삶 가운데 찾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저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 인생의 삶의 이유와 목적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내 맘대로 살고자 하는 그러한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제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엄청난 일을 맞이하고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였다고 나는 방치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내 인생의 주인, 내 삶의 이유가 주님이십니다.
매일 그렇게 고백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