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목사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8). 성령님은 인간의 공식이나 예상을 따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틀에 잡아넣고 공식으로 만들려 할 때 조작하게 됩니다. 이런 조작의 예가 기도 받고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오십 년 전 성령의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감당이 안 되어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쓰러지는 것이 성령님이 임하신 증거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해 주는 사람은 상대방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 쓰러뜨리기도 하고, 기도 받는 사람은 기도해 주는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쓰려져 주는 해프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을 연습시키는 것도 비슷한 조작의 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령님은 같은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생명의 삶 공부 중간에 있는 성령 체험 시간 때 보면, 성령님께서는 매 기마다 다르게 역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어떤 때에는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방언이 터지기도 하고, 육신의 치유가 일어나기도 있고, 회개가 쏟아지기도 하고, 외적으로는 전연 아무런 나타남이 없는데 내적인 변화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체험 시간에는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시나 호기심을 갖고 임해야지, 특정한 방법으로 성령님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대하면 조작하기 쉽습니다.
진정한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공식화 하려 하지 말고, 성령님이 일하고 계시는 방법을 감지하여 이에 순응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같은 방법으로 두 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여, 어떻게 새롭게 일하고 계시는지 주의를 기울여 살피고,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좇아야 합니다.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모토보트가 되려하지 말고, 바람 부는 데에 돛을 맡겨 순항하는 요트가 되어야합니다.
성령님의 사역을 조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말라는 제 3 계명에 저촉됩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은 성령님의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다가 사도들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습니다(행 8:18~23). 성령님의 사역을 조작하는 것은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에 못지않게 엄중한 처벌이 따르는, 위태로운 짓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삶을 충만히 채우기를 원하시고,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의 사역을 틀에 집어 넣거나 공식화 하려 하지 말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평양 대부흥 운동과 같은, 현상은 다를지 모르지만 역사는 강력한 은혜를 베푸실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