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는 성령님 (1)

최영기 목사

입으로는 성령님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성령님을 부인하는 목사들이 꽤 있습니다.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은사는 성경이 완성되면서 사라졌다는 근거 없는 신학에 매여, 성령님의 사역을 부인할 뿐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개인이나 단체를 이단으로 몰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령충만은 ‘영감’ 정도이고, 성령의 은사는 ‘재능’ 정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님을 부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니까 부인합니다.

성령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지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에게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고, 맡기지 않으니 체험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험하지 못하고서 성령님의 사역을 비판하는 일은 극히 조심해야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지, 진지하게 자신의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 성령님을 거스르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엄중하게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막 3:29).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교회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1907년에 있었던 평양 대부흥과 같은 강한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흥 운동의 특징은 회개였습니다.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하여 사람들은 숨겼던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원수지었던 사람들과 화해하고, 돈 꾸어주었던 사람을 찾아가 떼어먹었던 돈을 갚고, 과거의 범죄 행위를 고백하며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고…

평양 대부흥의 재연을 꿈꾸는 분들은 이런 역사를 사모하여 회개 모임을 갖기도 하고, 회개 각성 집회를 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흥 운동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같은 방법으로 두 번 일하시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