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는 대로 유명한 사람의 말부터 인용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로버트 우스노(Robert Wuthnow)는 소그룹 운동을 ‘이 시대의 가장 큰 사회적 혁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소그룹은 일반 사회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그룹이라는 것은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는 가정부터 작은 동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필수적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특히 한국 교회는 이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교회의 한 체계를 이루며 진행되어 왔습니다. 어떤 교단은 속, 또 다른 교단은 구역, 언제부터는 순, 셀, 최근에는 작은 교회, 목장 등 수많은 이름으로 소그룹들이 교회 조직 속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연한 소그룹이 목회 현장에 있는 제겐 그리 호감있게 다가오진 못했습니다. 사실 앞에서 말한 사회학자도 소그룹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아울려 혁명이라는 표현을 했으니까요.
목사로서 제 고민은 ‘소그룹을 어떻게 교회 조직에서 세울 것인가’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사람은 어떻게 예수님을 어느날 믿게 되는가? 왜 어떤 시대는 사람들이 많이 교회로 몰려드는데 어떤 시대는 성도가 줄기도 하는가? 어떤 사람은 빨리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데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변하기 어려운가? 라는, 영혼 구원과 믿음의 성장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해야만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제가 이 질문의 끝에서 찾은 것이 가정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약 2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가정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같이 모인 목장을 통해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목장은 하나의 교회의 개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잘 못한다고 해산하거나 목장원을 이리 저리 옮기지도 않습니다. 어떤 목장은 아픔을 오래 겪으며 천천히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목장은 쉽게 성장하기도 합니다. 꼭 우리 사람이 성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가운데 철저한 섬김은 나를 믿음의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많은 프로그램을 접하고 배우며 가르치기도 한 저로선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지식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지위로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섬길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미주에서 시작하여 2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가정교회 모델은 이미 한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교회가 천단위의 숫자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곳 호주에서도 수십개의 교회가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가 그것을 하는가에 대한 것은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을 적용한다고 해서 금방 우리 교회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모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목장에서 자연스런 성장통을 거쳐 하나 둘 아름다운 열매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에 우리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며 천국을 이뤄가기를 바랍니다.
-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