눔바의 집과 같은 교회

눔바의 집과 같은 교회

2016년 1월 3일 주일 설교 요약
골로새서 4장 15절 말씀입니다.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삼일교회 가정마다, 하나님께서 올해 나에게 이러이러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간증이 연말에 풍성하게 나타나는 가정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이들이 자신의 집을 개방해서 교회 처소로 삼기 시작한, 공적인 교회 건물이 많이 없던 시절입니다.
나중에는 교회 건물들이 화려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교회의 부흥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곳, 정해진 시간동안 다녀오는 곳, 예배를 드리고 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교회 식구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알더라도 그들의 마음 속에 어떤 괴로움이 있고 믿음의 어려움이 있고 어떤 영적인 간구함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대다수가 그렇게, 진정한 사귐이 없는 공허한 모임으로서의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눔바는 골로새, 라오디게아에 살았던 성도, 여자라고 본문에 나와있습니다.
이 여인은 특별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서, 내 집을 개방해 교회 처소로 써야겠다는 특별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 보면,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라고 고린도교회에 말하고 있습니다.
아굴라, 브리스가라는 사람들은 눔바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동역자라고 말한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유명한 성경교사를 불러서 그의 부족한 부분을 가르치기도 한 부부였습니다.
이 부부도 교회를 자기의 가정에서 이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16장 14절, 15절을 봅시다.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 이름들은,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읽을 때마다 생소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 뒤에는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는 말이 붙어있습니다.
이들은 혼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에서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건물을 지어놓고 사람을 부른 것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전하고 믿기 시작했을 때에 예배의 장소, 사귀는 장소, 기도할 장소가 필요해졌기에 그들은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눔바의 교회, 이 여러 사람들의 교회는 과도기적, 임시적인 교회였을까요?
사실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생각할 때 지칭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9절 50절을 보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을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을 제쳐두고 제자들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 지금 나와 함께한 제자들, 동역자들이 바로 내 형제이고 자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족을 버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은 평생 행복하고 함께해야 할 가족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영혼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누가 진짜 형제 자매인가, 이 세상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함께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형제 자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구성원이 너희의 가족이고, 가족 공동체처럼 살아야 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가정에서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이루어서 함께 모여 예배하고 나누고 사귀고 기도하는 공동체를 주님은 교회 공동체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할까요?
디모데전서 5장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교회의 모두를 가족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분위기로만, 태도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 실제의 어우러짐과 부딪힘이 있어야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초대교회에선 가족 공동체로서 신앙생활을 했기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혹, 그것이 그리 좋지많은 않다고, 가족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족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성숙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왜 하십니까,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이 온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성품, 거룩하심이 내게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나를 확실하게 성숙시켜주는 곳은 바로 가정입니다.
나를 부모, 형제, 자식과 함께 어울려 지내며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가족은 늘 우리에게 즐거움만 주지는 않고, 가끔 속상한 일도 주지만, 나를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눔바의 집과 같은 교회를 지향함으로 우리의 성숙을 꾀해야만합니다.
우리는 이제 성숙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6년 우리의 표어가 이것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좀 더 믿음의 성숙함이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아픔과 기쁨이 함께 어우러지며 성숙하고, 그럼으로써 2016년을 마감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많이 성숙하게 해주셨다는 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한 공동체가 아니라면, 누가 우리에게 오겠습니까?
누가 온들, 우리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함께 어우러짐으로 말미암아서 행복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힘들고 지친이들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하다, 한 번 와 보세요, 힘들고 괴롭다면 우리 교회로 와 보세요, 해결될겁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결함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라고 초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족 공동체로서 서로를 섬기다가 당연히 오는 아픔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그것을 딛고 일어나 서로를 섬깁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집과 같은, 아니 집보다도 더 행복한 위로와 평안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식구가 늘어나는 것이고, 그 식구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영혼 구원하는 교회가 되는 것,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 먼저 같이 어우러짐으로 하나님 안에서 성숙하고 행복한 공동체의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지만 눔바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 있는 교회는 이름 없는 작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 서신서를 썼을 때 그 교회를 이루고 있는, 골로새 교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 박해를 받았을, 순교자가 나타났을 수 있는 교회가 눔바의 집에서 모인 교회라는 것입니다.
우스운 교회, 작은 교회가 결코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삼일교회는 작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작지 않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그런 교회를 이루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소중한 삼일교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각의 가정들 모아주셔서 한 공동체를 이루어 주시고, 이 공동체를 통하여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제는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떻게 해야되는 것인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너희가 바로 나의 형제요, 나의 자매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눔바의 집과 같은 교회를 이루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