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2일 주일 설교 요약
에베소서 4장 11절-16절 말씀입니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최영기 목사님이 한 20여년 전에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나눠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세번째 시간입니다.
인간의 노화라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사람은 늙더라도 사는 동안 젊은 마음과 몸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우리의 몸과 비슷하다고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젊음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살기도 하고, 또는 노화를 모르고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사는 교회도 있습니다.
유명한 기독교 작가 팀 케일러 목사님은 뉴욕 한 가운데에서 목회를 하시는데 사람들이 그 교회를 일컬어 맨하탄에서 가장 생기가 넘치는 회중이라고 한답니다.
우리 삼일교회도 생기 넘치는 청년의 생기와 기상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 뭘 해야 하는가?
오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분담, 협동, 협업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우리 몸처럼 유기체, 연관되어 있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각각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지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장 11절을 보면 –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들이 나옵니다.
로마서 12장에는 이러한 은사들이 언급됩니다.
예언,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섬기는 일, 다스리는 일, 구제, 긍휼 등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어떤 것들이 나옵니까?
예언, 영들 분별하는 것,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능력 행하는 것, 병 고치는 것 등의 많은 은사들이 열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개성과 성격이 다른 지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 조차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다른 생각을 주셨을까요?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다른 은사를 주신 이유는 바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다시 11절에 열거된 직분들의 공통점을 보면, 로마서나 고린도전서의 직분들과는 한가지 차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사도란 예수님의 구원을 말하고 예수님의 제자됨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약 교회에서의 선지자는 예언과 관계가 됩니다.
현재 우리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합니다.
보통 예언이라고 하면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성경에서의 예언이란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전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디모데 같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일을 계속 하라고 권면했던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목사와 교사인데, 이 둘은 한 그룹으로 봅니다.
하나의 관사에 두개의 단어가 접속사로 연결되어서, 하나의 직분을 얘기합니다.
이들은 교회의 지도자이고, 복음과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12절의 말씀 –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바로 이것입니다.
봉사의 일은 곧 섬김의 일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목사는 설교를 하고 성도는 교회 건물의 관리를 담당하는 것 또는 행정적인 봉사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제대로 감당한다고 성도의 봉사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까요?
이 “봉사의 일” – 디아코니아스 – 라는 단어의 진정한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번역하자면 섬김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Service Ministr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김의 의미를 잘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12절의 뒷부분에 나온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인데, 봉사의 일을 한다는 구절과 대등구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Ministry라는 말 자체도 섬김이라고 하기도 하고 사역이라는 의미가 있기에 Minister라고 하면 사역자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성도가 섬김의 일을 한다는 것은 신학교를 가야만 가능하거나 교회 안의 특수한 그룹만 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의 일은 바로,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을 세우는 사역자라는 분명한 의식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목회자 그룹이나 사역자를 구분하여서 나는 사역자가 아니라는 인식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섬김의 일들이 주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합니다.
본문 13절 이하를 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봉사하고 장성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 떠밀려 다니지 않는다, 건강해진다, 섬김의 일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섬김의 일, 봉사의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을 돌보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분에서도 영혼을 돌보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목회를 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는 일이라면, 저 혼자 가지지 않고 여러분과 같이 나누어 가지고 싶습니다.
천국가는 것이 왜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큰 상급이 있기에 천국 가는 것이 기대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는 영혼을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돌보아야 할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을 섬기는, 그것이 우리 봉사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일들이 행정적이거나 건물을 돌보는 일이지, 그것이 중심은 아닌 것입니다.
16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의 사역, 저와 여러분의 섬김의 결과가 이러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세울 뿐만 아니라 자라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모든 지체의 제 역할이 필요하니, 한 명도 빠짐 없이 자신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동참해야 하고, 균형을 가지고 활동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물어볼 때에, 나는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노라고 서슴없이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협력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가 주님의 몸의 한 지체가 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각 지체가 건강할 때에 우리 교회는 청년의 생기가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노화의 속도를 늦추거나 막을 수 없겠지만 교회는 언제나 푸르름을 간직하고 생기가 넘칠 수 있는 그것이 주님의 몸의 특징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힘든 것을 피하지 않습니다.
청년은 일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삼일교회가 청년의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를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바른 섬김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청년의 삼일교회라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몸은 늙을 수 있지만, 우리의 영은 날마다 더 강건하여지고, 이 강건하여지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늘 생기가 넘치게 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소망합니다.
우리 삼일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청년의 기상이 사그러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넘쳐나는, 그러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