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4일 주일 설교 요약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아마, 제가 목회하면서 본문이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가장 많이 중복되는 본문이 오늘 여러분과 나누는 이 본문이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픽션, 퓨전으로 얘기하자면, 제가 어제 위대한 사도 베드로를 만나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신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였습니까?
베드로가 말합니다.
아, 그건 내 인생에 그건 두 번 있었네.
언제였죠?
첫번째는 말이야,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였는데, 그 때 바로 내 인생의 항로가 완전히 바뀌었던 순간이었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부인 내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해 허탕을 쳤을 때에 목수 출신인 분이 내게 저쪽에서 그물을 던져보라고 말을 하셨지.
권위있게 설교를 하시고 사람들도 많이 따르는 분이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순종했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지.
그래서 내가,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아 이 분이면 족하겠다, 이 분이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어서 내가 그 때부터 친구들과 더불어서 그 분 문하생이 되었네, 라��
얘기를 하는겁니다.
두번째는 언제였죠?
아, 두번째도 우연찮게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그 때도 내가, 물고기 잡다가 허탕친 그 때였네.
그런데 이 두번째는 말이야, 내 사역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어.
첫번째가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였다면 두번째는 내가 사역자로서 사역을 하는데에 있어서 터닝포인트라고 말하고 싶네.
그 때는 바로 내가 내 인생, 주님 따라다니면서 살았던 3년의 세월, 그 세월을 완전히 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어.
그래서 나는 다시 고기를 잡으려 어부로 나섰지.
그런데, 이 때도 이 날 밤도 내가 고기를 잡고, 허탕을 쳤네.
그런데 누가 저 멀리서, 새벽 즈음에, 아, 그 오른편으로 한 번 그물을 던져보시오, 라는 소리를 듣고,
내가 그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졌는데, 물고기가 올라왔지.
아, 그 때는, 물고기를 팔려고 세어보니까 153마리나 되었던거야.
우리 동료가, 주님이다, 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깜짝 놀라서 바다에 빠져 주님께 달려 나갔더니,
주님께서 불 피워놓고, 조반 준비 다 해놓으시고, 추울까봐 몸 녹이라고 하시고, 그리고 나한테 물으셨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가파스 메?
필레이스 메?
주님께서 나에게 세 번 물으셨어.
그 때 베드로가 그 질문을 재현하는 순간, 베드로의 입에서 아가파스 메, 아가파스 메, 필레이스 메, 제가 이 소리를 듣고 잠을 확 깨었습니다.
여기까지가 퓨전입니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베드로의 마음이 얼마나 기가막혔을까, 라는 마음때문에 잠을 깨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그것도 세 번, 세 번씩이나.
제가 베드로였다면요, 제가 주님 앞에서 그 질문을 들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을 것 같아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서 한마디 했을겁니다.
주님,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라고 저는 한마디 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은 참, 눈치도 없으신 분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거기다가 불까지 피워 놓았어요.
이, 불을 피워놓았다는 것은 베드로를 한 번 더 죽이는 일입니다.
왜요? 베드로에겐 그 날 밤 사건을 잊을 수 없잖아요.
그 불 앞에서, 주님 잡히시던 그 날 밤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는데.
나는 주님 몰라요, 나는 그런 사람 몰라요, 이렇게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그걸 피워놓고 물어보시는거에요.
아가파스메? 아가파스메? 필레이스메?
계속 물어보시는겁니다.
이 말을 제가 들었다면, 주님 왜 이러세요, 왜 이러세요 도대체, 그러면서 그냥 펑펑 울기만 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반문을 하는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책망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때 그 사건, 세 번 부인했던 그 사건, 책망으로 끝날 것인가요?
책망하지 않아도,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사실 먼저, 모든 관계를 그냥 다 정리하고 싶었을 겁니다.
아, 이제는 주님과의 모든 관계는 나는 끝났어, 라고 말하고 싶었던 순간이었을 겁니다.
자신을 잃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도 두려웠습니다.
전에 기세등등했던 베드로 아닙니까?
그런데 그 마음, 다 사라졌어요.
주님을 위해서 뭔가 해보려는 의욕이 아예 다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표현하는대로 하면, 뭐에요? 시험에 드는겁니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단어? 영적 슬럼프에 빠진 것이지요.
이제는 다 접고 싶은 마음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뭐 꼭, 내가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 봐야 별 소용도 없고, 그래 이제 고기나 잡으러 다시 가자.
고기 잡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자.
내 인생의 3년? 그냥 잃어버리면 그만이야, 잃어버린 셈 치자, 라고
말하고 끝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사실 많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지요.
이런 저런 의욕을 가지고 신앙생활 할 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아, 신앙생활 해보니까 재미도 있어요, 간증거리도 있어요.
사람들 앞에 나와서 간증도 합니다.
그 기회가 없다면 그냥 개인적으로도 얘기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도 해봅니다.
한 번 믿어봐, 신앙생활 해보니까 뭔가 다르더라구, 이렇게 간증도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뭔가 하고 싶어요,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 뭔가 섬기고 싶어요, 전도도 하고 싶어요.
그런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의미있는 새 신앙생활을 찾아서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넘어질 거리가 눈 앞에 턱, 다가오는 겁니다.
여지없이 넘어지는 것이지요.
사탄은 우리를 영적으로 낙담하는 가운데에 들어가게 합니다.
누가 한마디만 해도 기다렸다는 듯이, 때는 이 때다 하며 더 고립된 곳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실, 책망하는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질문이 그렇게, 아니면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질문은 어떤 질문이었을까요?
주님의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세번이나 이어진 질문은요, 베드로를 치료하기 위한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너 도대체 왜 그랬니, 라고 그렇게 따지면서 책망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 나 사랑하지? 오히려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른 것 물어보지 않으셨어요.
너 나 사랑하지?
거기다가 첫번째 질문은 어떻습니까?
너,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나 사랑하는 것, 맞지?
이렇게 물어보신거에요.
너, 다른 사람들보다도 나 사랑하는 것, 맞지?
네, 제가 주님 사랑합니다.
필로-세.
세 번 대답합니다.
거기다가 뭐라고 해요? 모든 것을 아시오매,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제 마음, 비록 실수하기는 했지만 예전에 열정을 가지고 주님 따라다니면서 주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했던 것, 주님을 바라봤던
그 마음이 진심인 줄을 아십니다, 라고 주님께 다시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가장 중요한 치료가 일어나고 있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다 그래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의도를 곡해할 때 그 사람과 말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데, 이해하지 않는데, 말도 하기 싫은 것이지요.
근데, 주님께서 이 상황에, 치료하시기 위해서, 지금 베드로를 치유하려고 하시는데, 그래서 이렇게 불도 피워놓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좀 이상한 점이 있어요.
여기에서 주님은, 그냥 대놓고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를 이해한다.
내가 너를 이해해.
이렇게 한마디 하시면 될거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질문만 하셔요.
저는 그게 이상합니다.
치료해주고자 하면 먼저 다가가서, 너 그때 힘들었지? 너, 그때 네 마음 아니었지? 내가 다 이해해.
이렇게 말씀하시면 될거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요.
주님은 지금 이 질문을 통해서, 아주 노련하게 베드로의 인지를 치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생각들이 지나치며 자동적인 사고가 옵니다.
나를 향해서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막 지나치는데, 이것에 의해서 내가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동적 사고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실체가 아니에요. 진짜 내가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거기에 계속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얘기하면, 믿는 사람이 얘기하면, 그런 것일 수도 있지요, 사탄이 주는 생각.
시험에 빠지게 하는 그런 생각들이에요.
베드로가 지금 거기에 그냥 묶여져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십니까?
질문을 하면서, 실체를 찾아가도록 하시는 거에요.
지금 베드로를 누르고 있는, 그 마음의 엉뚱한 것, 자동적 사고가 아니고, 지금 베드로의 그 진심을 찾아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갖고 있었던 본래의 마음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 사람의 본래의 마음, 그것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어젯밤 인터뷰에선 물어보지 못했는데, 아마 베드로는 눈물 깨나 흘리면서 주님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했을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로 향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향한 그 본래의 우리의 마음 있잖아요?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심령은 더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향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화려하지 않아도 돼요, 크지 않아도 돼요.
그러나 그 진심, 여러분 그 진심을 가지고 주님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해본 적 있나요?
이거, 고백해본 사람하고 고백해보지 못한 사람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한 번 조용히, 아무도 없는 순간에, 고독하게 느껴지는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을 향해서 그렇게 말씀해보세요.
주님, 내세울 것은 없지만, 자랑할 것은 없지만, 제가 마음의 거울을 가지고 제 자신을 들여다보면 정말 챙피하고 부끄러운 것 뿐이지만
그래도 저는 주님 사랑합니다, 한 번 고백해보세요.
고백하면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진심이 거기에 조금이라도 담겨서 주님께 그렇게 고백하면요, 저와 여러분 가운데는 반드시 치료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바로 회복이 일어나는거에요.
주님은 지금 그걸 원하시는 겁니다.
베드로가 갖고 있는 그 진심의 마음,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의 마음.
비록 실수를 했지만, 그래, 내가 네 마음의 깊은 곳에 잠재된 그 마음을 내가 끌어내고 싶다.
주님께서 이 질문을 하시는 것은, 책망을 위한 질문이 아니었고, 치료를 위한 질문이었고, 또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다면,
주님께서 왜 이렇게 질문을 하셨을까, 세 번이나 연거푸 질문을 하셨을까,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사역을 위한 질문이었다.
제가 초반에, 베드로의 터닝포인트를 얘기하면서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의 사역을 위한 질문이었어요.
주님께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그래 고맙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세번이나 연거푸,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내 양을 먹이라.
주님께서 그의 고백을 듣고 하시는 응답이었어요.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의 고백을 통해서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을 확인하십니다.
베드로는 또 그 세번의 고백을 통해서 자기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주님, 이 사랑의 마음, 변치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다짐을 하고 있는겁니다.
이 다짐을 하는, 이 사랑의 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베드로에게, 사랑하는 그 제자에게, 주님께서 이제,
너는 내 양을 먹일 수가 있다. 너는 내 사람들을 이제 보살필 수가 있다. 너는 내 영혼들을 이제 섬길 수 있는 자가 되었구나, 라고 그렇게 확인하시면서
맡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영혼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우리 삼일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다, 이렇게 뭇 영혼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서 돌보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반드시 되어야해요.
그게 그리스도인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런 중차대한 일들을 감당을 행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요,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영혼을 돌보는 일 있잖아요?
영혼을 돌보는 일, 사람을 돌보는 일, 주님의 사람을 케어하는 일, 이 일은요,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헌신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을 말해요.
교회에 대해서, 사역에 대헤서 헌신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내 의욕을 가지고 행합니다.
그러나 헌신된 사역은 반드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인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없는 헌신은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한, 나의 헌신에서는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뭐가 능력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사역 가운데서 능력이 나타나길 원합니까?
우리의 사역 가운데서 능력이라는 것은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가족을 향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을 위해서 나는 손해보는 인생을 살고 있어,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족들을 위해서 사랑하지 않는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생해도, 그 아이 때문에 눈물을 흘려도, 허구헌 날 잔소리를 해도, 그냥 아이의 존재를 보는 순간, 아, 내가 아이를 사랑하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그냥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씻어버리는 겁니다.
특별히 헌신한다, 희생한다, 손해본다,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없는 거에요.
왜그렇습니까?
그것은, 사랑의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신앙은 얼마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그 문제 때문에 씨름을 하고, 그것이 부족할 때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지금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지, 라는 질문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에,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헌신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헌신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상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정말 주님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진심되게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사건 이후로 베드로는 많은 일들을 감당합니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로 구걸하고 있는 걸인을 일으킵니다.
설교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아주 큰 역사를 이루고 공헌하며, 많은 일들을 감당합니다.
왜그랬을까요?
저는 이, 사역의 터닝 포인트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한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뭐라고 물으십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똑같이 물으시고 계십니다.
아가파스 메?
필레이스 메?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책망하기 위해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그 사랑의 고백을 듣기 원하십니다.
그 진심의 고백을 듣는 순간, 우리 마음에서는 치료가 일어날 것입니다,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게서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는 순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너는 이제 내 사역을 해도 되겠다,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주님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니오, 날이 갈수록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더 풍성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온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요,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일들을 감당해 나아가야 할 여러분들인데, 이 말씀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께서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이 마음 가운데 여러분, 평생 주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 먼저, 내 마음 가운데에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기 원하시는 주님.
비록 잘난 것이 없을지라도, 진심어린,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
확인하고, 고백하고, 주님께서 맡겨주시는 일을 감당하기 원하오니, 하나님 그런,
진심어린 사역자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삼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